시황제의 죽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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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라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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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제는......, 의복과 깃발과 부절의 색은 모두 검은색을 숭상했다. 숫자는 6을 기준으로 했으니 부절과 법관을 모두 여섯 치로 하고 수레 너비는 여섯 자로 했다. 또 여섯 자를 일보라 하고 수레 한 대를 여섯말이 끌게 했다. ......, 천하를 나누어 서른여섯 군으로 만들고 군마다 수(비)군 위군, 감군을 두었다. 백성을 일컫는 말을 '검수'로 고쳤다. 천하에 큰 잔치를 베풀었다.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들여 함양에 모으게 한 후 녹여서 종거를 만들었는데 무게가 각각 일천 석이었으며 궁구러 뜰에 두었다. 법률과 도량의 무게와 길이를 통일했다. 수레의 바퀴 폭을 동일하게 했으며, 문자를 통일했다. ...... [시황 32년 불로초 구하기] 진시황이 한종, 후공, 석생을 시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하는 신선의 약을 구하게 했다. ......, [시황 34년 분서갱유] 승상 이사가 말했다. ......, 지금은 천하가 이미 안정되어 법령이 통일되고, 백성들은 가정에서 농사에 힘쓰고, 선비들은 법령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을 익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유생들은 지금 것을 본받지 않고 옛것을 배워 이 시대를 비난하면서 백성들을 미혹하고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 아직도 사사로운 학문으로 서로 함께 법령과 교화를 비난하고, 사람들은 내려진 법령을 듣고 각기 자신의 학문으로 그것을 의논하지, 조정에 들어오면 마음속으로 반감을 품고 조정을 나오면 길거리에서 논의하며, 군주에게 과시하여 명예를 만들고 기이한 것을 취해 고귀함으로 만들고 아랫사람을 이끌어 비방을 조성합니다. 이런 짓을 금하지 않는다면 위로는 군주의 위세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붕당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마땅이 이를 금지하는 것이 이롭습니다. ......, [시황 35년 아방궁을 시작하다.] 도로를 넓혔다. 구원으로 길을 내어 운양까지 이르러 산을 깍고 골짜기를 메워 곧바로 통하게 했다. 이때 지시황은 함양에 인구는 많은데 선왕의 궁전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내가 듣건대 주나라 문왕은 풍에 도읍하고 무왕은 호에 도읍했다 하니, 풍과 호 사이가 제왕의 도읍지이다." 이에 위수 남쪽 상림원 일대에 궁전을 지었다. 먼저 아방에 전전을 만들었는데, 동서로 오백 보 이며 남북으로 오집 장으로 위쪽으로 일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쪽으로 다섯 장 높이 깃발을 세울 수 있었다. 사방으로 말이 달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궁전 아래에서부터 곧장 남산까지 이르게 했다. ......, 아방궁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완성되면 이름을 선택하여 다시 명명하려고 했다. 아방에 궁전을 지었기 때문에 천하가 그것을 아방궁이라고 했다. 또 궁형과 도형(유배형)을 받은 칠십여만 명을 나누어 아방궁을 짓거나 여산에 능묘를 짓게 했다. ......,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가 간언하여 말했다. "천하가 막 평정되었으나 먼 곳의 백성들은 아직 따르지 않고 있으며, 유생들은 모두 암송하며 공자를 본받고 있은데, 지금 황상께서 법을 엄격하게 하여 그들을 옭아매니, 신은 천하가 안정되지 않을까 봐 두렵습니다. 황상께서 이점을 살펴 주십시오." 그러자 진시황은 노여워하며 부소를 북쪽으로 상군에 파견하여 몽염을 감시하게 했다. ......, [시황 36년 유성이 동군에 떨어지다] 유성이 동군에 떨어졌는데 땅에 닿자 돌덩이가 되었다. 백성들 가운데 누군가 그 돌에 새겨 말했다. "진시황이 죽으면 땅이 나누어지리라." ......, 진시황은 돌이 있던 곳 주변에 사는 자들을 모두 잡아 죽이고 그 돌을 불살랐다. [시황제 37년 시황제의 죽음] 방사 서불 등이 바다로 들어가 신선의 약을 찾았으나 몇 년이 지나도록 얻지 못하고 비용만 많이 쓰자, 책망이 두려워 거짓으로 말했다. "봉래의 약은 구할 수는 있으나 항상 커다란 상어 때문에 고충을 당했기 때문에 도달할 수 없사오니, 청하건대 활 잘쏘는 사람과 함께 가서 상어가 나타나면 연노로 쏘도록 해주십시오." ......, 스스로는 연노를 가지고 큰 물고기를 기다렸다가 쏘려고 했다. 낭야에서부터 북쪽으로 영성산에 이르렀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지부산에 이르러 거대한 물고기가 나타나자 화살을 쏘아 죽였다. 마침내 바다를 따라 서쪽으로 갔다. 평원진에 도착했는데 병이 났다. 시황제가 죽는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여러 신하들은 감히 죽음에 대한 일을 말하지 못했다. 조고는 곧 공자 호해, 승상 이사 등과 은밀히 모의하여 진시황이 공자 부소에게 내린 밀봉 서찰을 뜯어 승상 이사가 사구에서 유조를 받았다고 거짓으로 바꾼 후, 공자 호해를 태자로 삼았다. 그러고는 다시 서찰을 만들어 공자 부소와 몽염에게 주고 그들의 죄를 낱낱이 지적하면서 자살하라는 명을 내렸다. ......, 순행하다가 드디어 정형에서부터 구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때마침 여름이라 황제의 온량거에서 악취가 나자, 즉시 수행하던 관원에게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 한석을 싣도록 명하여 시체에서 나는 악취와 구분하지 못하게 했다. ... 9월에 진시황을 여산에 안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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