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사람. 장의(張儀)와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처음에 진(秦)나라의 혜왕(惠王)을 비롯하여 제후 밑에서 유세를 하였으나 채용되지 않았다.
강국인 진나라와 한(韓)나라 두 나라가 서로 교전하고 있어 산둥 지방의 제국들은 진나라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있던 때이므로, 연(燕)나라의 문후(文侯)에게 6국 합종(合縱)의 이익을 설득하여 받아들여졌다. 다시 조(趙)·한(韓)·위(魏)·제(齊)·초(楚)의 여러 나라를 설복하는 데도 성공하여, BC 333년 연나라에서 초나라에 이르는 남북선상(南北線上)의 6국의 합종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혼자서 6국의 상인(相印:재상의 인장)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 무안군(武安君)이라 칭하여 이름을 떨쳤다. 이 때문에 동방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던 진나라는 십수년간 그 진출을 저지당했다. 그러나 그의 합종책은 장의 등이 헌책한 연횡책(連衡策:連橫策이라고도 함)에 패배하여 실패했다. 그 후 연나라의 관직에 있다가 다시 제나라에 출사했으나, 제나라 대부(大夫)의 미움을 사 암살당하였다. 소진이 일개 서생 출신으로 지모변설(智謀辯舌)로써 공명부귀를 얻어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기 때문에 진나라를 위해 연횡책(連衡策)을 썼던 장의와 함께 전국시대 책사(策士)의 제1인자로 병칭(竝稱)되고 있다. 그의 동생 소대(蘇代)·소여(蘇厲)도 역시 유세가로서 알려졌다. 진에 대한 것은 《전국책(戰國策)》에 자세히 기재되어 있으나,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점이 많아 후세에 와서 억지로 뜯어맞춘 것이라는 설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진 [蘇秦]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합종과 연횡 책
중국 전국시대 합종가와 연횡가들에 의해 주장된 외교술로 주로 소진과 장의가 유명함. 이익과 노선에 따라 離合集散(이합집산)함. ≪史記(사기)≫ 蘇秦張儀列傳(소진장의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合縱(합종)과 連衡(연횡)의 두 외교정책을 합한 말로, 국제무대에서의 외교적 角逐戰(각축전)을 가리켜 쓰는 말이다.
합종의 ‘종’은 縱(종)의 뜻으로 南北(남북)을 뜻하고, 연횡의 ‘횡’은 橫(횡)의 뜻으로 東西(동서)를 말한다. 이 말을 처음으로 들고 나온 것은 전국시대 蘇秦(소진)과 張儀(장의)였다.
소진과 장의는 같은 鬼谷子(귀곡자)의 제자였다. 소진이 먼저 남북으로 합작해서 방위동맹을 맺어 秦(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공존공영의 길이라는 ‘합종책’을 들고 나와 六國(육국)의 군사동맹을 성공시킨 다음, 그 공로로 六國(육국)의 재상직을 한 몸에 겸하고, 자신은 縱約長(종약장)이 되어
육국의 왕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장 노릇을 하게 되었다. 소진의 이 정책을 깨뜨리기 위해 각국을 개별적으로 찾아다니며
진나라와의 연합책만이 안전한 길이란 것을 설득시켜 소진의 합종책이 사실상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 것이 장의였다. 두 사람으로 인하여 ‘蘇秦張儀(소진장의)’라는 말도 생겨났다.
외교무대에서 활약하는 사람을 縱橫家(종횡가)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국회의원들이 이익과 노선에 따라
離合集散(이합집산)하는데 이것을 합종연횡이라고 표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합종연횡 [合縱連衡]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2011. 2. 15., 조기형, 이상억)
사기열전[소진열전] 우리가 선거철만 만나면 나오는 "합종연횡" 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 입니다. "합종"책을 통해 강대국 진에 맞선 주요인물이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진"이라는 인물 입니다.
이 야기를 꺼낸것은 그의 성품때문입니다.
소진의 말 중 "만일 나에게 낙양성 주변에 밭이 두 이랑만 있었던들 어찌 나라 재상의 인수를 찰 수 있었을까?" 라는 말과 그 뒤 그의 행동이었습니다.
처음 이 문구를 만났을 때, 도저히 그 의미를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계속 읽고 곱씹어보니,
"만일 나에게 낙양석 주변에 밭이 두 이랑만 있었어도, 나는 그곳에 안주하고 살았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라는 말로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절박함은 "절망" 이 아니라 "희망" 이라는 말을 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현실"로 이루어내고 난 후, 그는 자신 주위의 사람들에게 "배품"으로써, 희망의 홀씨를 날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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