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에게는 이런 예리한 관찰을 통한 통창력과, 자신의 판단에 대한 신뢰로 부터 형성된 직관력, 그리고 굴하지 않는 고집이 있었기에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로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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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라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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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7년에 한나라 왕 신이 모반하자 고조는 몸소 군대를 이끌고 치러 갔다. 고조는 진양현에 이르러 한나라 왕 신이 흉노와 힘을 합쳐 한나라를 치려 한다는 말을 듣고 매우 화가 나서 흉노로 사신을 보냈다. 흉노는 장사와 살찐 소와 말을 숨겨 두고 늙고 약한 병사와 비쩍 마른 가축만 보여 주었다. 사신들이 열 명이나 흉노에 다녀왔는데 한결같이 흉노를 칠 만하다고 말했다. 고조는 다시 유경을 사신으로 보내 흉노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유경은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했다. "두 나라가 싸우려 할 때는 상대편에게 자신들의 장점을 과장하여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신은 흉노에 가서 여위고 비쩍 마른 가축과 늙고 약한 병사들만을 보았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자기들의 단점을 보여 주고 기병을 숨겨 두었다가 승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흉노를 치면 안 됩니다." 그 무렵 한나라 군대는 이미 구주산을 넘어 이십여만 명이 모두 진격하고 있었다. 고조는 노하여 유경을 꾸짖었다. "제나라 포호 놈이 입과 혀를 놀려 벼슬을 얻더니 이제는 망령된 말로 내 군대의 사기마저 떨어뜨리려고 하느냐!" 고조는 유경에게 칼을 씌워 광무현에 가두고 계속 진군하여 평성현에 이르렀다. 흉노는 과연 기병을 내어 백등산에서 고조를 에워쌌는데 이레 뒤에야 포위를 풀어 주어 벗어날 수 있었다. 고조는 광무현으로 가서 유경을 풀어 주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 말을 듣지 않아 평성에서 곤경에 빠졌소. 나는 앞서 사자로 갔다가 흉노를 쳐도 좋다고 말한 십여 명의 목을 모두 베었소." 그리고 유경에게 식음 2000호를 내려 관내후로 삼고 건신후라고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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