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신뢰를 얻어낸 이야기 (맹상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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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라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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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풍환이 맹상군이 빈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짚신을 신고 찾아왔다. 맹상군이 말했다. "선생은 먼 길을 오느라 고생하셨소.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소." 풍환이 대답했다. "당신이 선비를 좋아한다기에 가난한 이 몸을 당신에게 맡기고자 왔습니다." 맹상군은 풍환을 전사(신분이 낮은 손님들을 위한 숙소)에 머물게 한 지 열흘 뒤에 전사 책임자에게 물었다. "풍환 선생은 매우 가난한데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칼도 자루를 방울고랭이풀로 꼰 노끈을 감은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그 칼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긴 칼아, 돌아가자. 식사에 생선 반찬이 없구나.'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맹상군은 그를 행사(중간 계층을 위한 숙소)로 숙소를 옮겨 주었다. ......, 맹상군은 그를 대사(상등의 빈객이 드는 숙소)로 옮겨 주었다. ... 다시 숙소 책임자에게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은 여전히 칼을 두드리면서 '긴 칼아, 돌아가자. 집이 없구나.' 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맹상군은 이 말을 듣고 언짢았다. 일 년이 지나도록 풍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맹상군은 그 무렵 제나라 재상으로 1만 호의 설읍을 봉지로 받았으니 그 빈객이 3000명이나 되어 봉읍의 조세 수입 만으로는 빈객들을 보살피기에 넉넉지 못했다. ......, 맹상군은 풍환을 불러 일을 부탁했다. "빈객들은 내 어리석음을 모르고 다행이 몸을 맡긴 분이 3000명이나 됩니다. 봉읍의 조세 수입만으로는 도저히 빈객을 대접할 수 없어서 설 땅 사람들에게 이자를 얻으려고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설 땅에서는 해마다 조세가 들어오지 않고 백성 대부분이 이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빈객들에게 식사마저 접대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입니다. 선생께서 책임지고 돈을 받아 주십시오." 풍환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떠난다는 인사를 하고 설 땅에 이르러 맹상군에게 돈을 빌린자들을 불러 모아 이자를 10만 전이나 거두었다. 이 돈으로 많은 술을 빚고 소를 사들여서 돈을 빌려 간 자들을 불렀다. 이자를 낼 수 있는 자도 모두 오게 하고 이자를 낼 수 없는 자도 다 오게 했다. 모두 돈을 빌린 차용증서를 가져오게 하여 이쪽 것과 맞추어 보고 함께 모일 날을 정했다. 약속한 날이 되자 소를 잡고 술자리를 열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가지고 온 차용증서를 전처럼 맞추어 보고 나서 이자를 낼 수 있는 자에게는 원금과 이자를 갚을 날을 정하고, 가난해서 이자를 낼 수 없는 자에게는 그 증서를 받아서 불살라 버리고 이렇게 말했다. "맹상군이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 준 까닭은 돈이 없는 가난한 백성도 본업에 힘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이자를 요구한 까닭은 빈객들을 접대할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부유한 사람에게는 갚을 날을 정해 드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차용증서를 불태워 버리도록 했습니다. 이런 군주가 있는데 어찌 그 뜻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풍환이 돌아오자 맹상군은 이렇게 말했다. ......,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소와 술을 마련하지 않고는 돈 빌린 사람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알 수 없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용증서를 십 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갈 뿐이라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제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을 같지 안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격려하고 군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차용증서를 불살라 받을 수 없을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당신은 의심나는 부분이 있습니까?" 맹상군은 손뼉을 치면서 칭찬하고 고마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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